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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머나먼 나라 수단에서

발빠른 세계반응

by 꿈꾸는 웨건김 2020. 11. 19.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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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살면서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사람이 있으신가요?

 


 나는 초등학교 때 공부에는 관심이 없어 학교를 자주 빼먹었다.

 

교실에서 화약을 터트리거나 뱀을 풀어 놓는 짓에 앞장서서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며 여러 차례 정학을 당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나를 불량학생으로 인식하거나 포기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모진 테디 힐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내 삶을 이끌어준 분 중에 한 분이었다. 나는 학문적으로 평생 배운 것보다 그 1년간 배운 것이 더 많을지 모릅니다."

 

         - 스티브 잡스의 자서전의 한 부분 -

 

 

 

 

혼자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이기적(?)으로 태어나 스스로 잘 컸을 것 같은 스티브 잡스도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분이 계셨습니다.

 

 


이 같은 선한영향력은 한명의 한국인에 의해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라고 꼽히는 남수단에서 일어났습니다.

 

함께 있어주고 싶다.’ 수단의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입니다.

 

 

 

 

 

1962년 부산출생으로, 2001년 서울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11월 아프리카 수단 남부 톤즈(Tonj)로 향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오지로 불리는 수단의 남부 톤즈

오랫동안 수단의 내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며 주민들은 살길을 찾아 흩어져 황폐화 된 지역인데요.

이태석 신부는 이곳에서 가톨릭 선교활동을 펼쳤으며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가는 주민들과 나병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담과 짚풀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습니다.

 

 

또한 병원까지 찾아오지 못하는 주민들을 위해 척박한 오지마을을 순회하며 진료를 하였습니다.

그의 병원이 점차 알려지게 되자 많은 환자들이 모여들게 되었고,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어 병원건물을 직접 지어 확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오염된 톤즈 강물을 마시고 콜레라가 매번 창궐하자 톤즈의 여러곳에 우물을 파서 식수난을 해결하기도 하였는데요. 하루 한끼를 겨우 먹는 열악한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농경지를 일구기 시작했으며, 학교를 세워 원주민 계몽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처음 초등교육으로 시작한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차례로 개설하였고 톤즈에 부지를 마련하여 학교 건물을 신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음악을 좋아했으며 전쟁으로 상처받은 원주민을 치료하는데 음악이 가장 좋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치료의 목적으로 음악을 가르쳤으며 예상을 넘는 효과가 있자 학생들을 선발하여 브라스밴드(brass band)를 구성하였습니다. 그의 밴드는 수단 남부에서 유명세를 탔으며 정부행사에도 초청되어 연주하였습니다. 2005년 그의 헌신적인 공로가 인정되어 제7회 인제인성대상을 수상까지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처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못했던 나머지 휴가차 입국하였을 때 종합 건강검진에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의 암은 이미 간으로 전이되어 있었는데요. 그는 아프리카에 머무는 동안 항생제를 투약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몸은 항암치료에 잘 반응할 것이라며 완치에 대한 희망을 가졌고 또 그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항암치료가 끝나고 며칠간 양평에 머물면서 단식과 생식으로 건강을 회복하려 했지만 증세는 나빠졌으며 결국 201011448세를 일기로 영면하였습니다.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울지마 톤즈>로 한국에 이름이 알려졌는데요. 사실 그전에도 여러 성당을 돌며 모금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이 영화가 개봉된 후 "그분이 그분이셨구나!"라는 반응을 보인 신자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

 

 

<울지마 톤즈>를 연출한 구수환 PD가 쓴 책인 울지마 톤즈-그후의 선물을 보면 여전히 열악한 남수단 내부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 책자를 보면 이태석 신부가 도왔던 현지인들은 하느님을 원망하면서 "우리가 서로 싸우고 죽게 하곤 왜 이태석 신부님을 데려가느냐"면서 울부짖으며 "그분만큼 우릴 돕던 분이 없어요"라며 눈물을 보였다고 합니다. 고인을 잘 알았던 선배 성직자들은 '이룬 것 없고 나이만 먹은 나를 데려가시지 않고, 앞으로도 할 일이 많고 나이도 젊은 이태석 신부를 먼저 데려가셨다'며 슬퍼했습니다. 이태석 신부가 자비를 털어가며 운영하던 병원은 이태석 신부와 같이 병원 일을 돕던 다른 한국인 신부가 남아서 하고 있는데 "정말 이태석 신부님이 하던 일을 도저히 못 따르겠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태석 신부의 선종 소식이 알려지고 톤즈를 비롯한 많은 현지 주민들이 이태석 신부를 애도하는 가두행진을 벌였는데, 워낙에 시국이 불안한 곳이라 시위나 행진 같은 집단행동이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음에도 군인이나 민병대원 누구도 제재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하지만 그들도 이태석 신부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 아닐까요?

 

 

20168월 뉴스를 통해 이태석 신부가 지은 학교의 제자들의 근황이 보도되었는데, 이들은 한국에서 의학을 배우고 . 토마스 타반 아콧과 존 마옌 루벤 두 사람은 20181월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이태석 신부의 후배가 되었다고 합니다.

 

 

 

20171월 산티노 뎅씨가 충남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였니다. 이태석 신부 선종 후 수단어린이장학회의 지원으로 한국에 왔고, 2015년 충남대 토목공학과로 편입해서 졸업하였습니다. 201812월 토마스 타반 씨가 드디어 졸업하고 정식 의사가 되었습니다. 아프리카 출신자가 한국 의대를 졸업하여서 의사가 된 건 그가 처음이라고 하는데요. 의사의 길을 택한 두 사람은 수련의 생활을 끝내는 대로 남수단으로 귀국하여 현지 병원을 개원 해 이태석 신부와 같이 봉사에 전념할 것 이라고 합니다

 

 

 

한사람의 선한 영향력이 그 제자들에 의해 더욱 많은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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